영원히 푸르른, 안식의 빛

신리사
(큐레이터, 학고재 기획팀장)

1. 들어가며

작업실 책상 위에 빼곡히 줄지어 선 초록색 물감 튜브들은 자연의 모든 색을 붙잡아두겠다는 조용한 집념처럼 보였다. 지난 몇 년간 나무를 그려온 호크마김에게 초록은 단순한 조형적 요소가 아닌, 지난한 시간을 통과하며 벼려낸 정체성의 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슬 맺힌 서늘한 새벽부터 모든 형체를 집어삼키는 심연의 밤까지. 호크마김의 초록들은 나무가 통과하는 모든 시간의 얼굴을 증언하는 기록과도 같다.

이번 전시의 제목 《Permanent Green Light》는 실제 존재하는 물감 색의 이름인 동시에, 영원히 바래지 않을 생명과 그 존재를 증명하는 빛에 관한 이야기다. 자라나는 새싹이 빛을 필요로 하듯, 색은 빛을 통해 완성된다. 어둠 속에 잠식된 것을 흔들어 깨워 제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빛. 따라서 빛은 대상을 변형시키는 힘이라기보다, 가려져 있던 고유성을 되찾아주는 ‘탈은폐’적 작용에 가깝다.[1] 색은 단순히 사물의 부속물이라기보다, 빛과 어둠이 마주치는 경계에서 피어나는 현상일지 모른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일찍이 이러한 색의 본질을 간파하고, “색채는 빛의 행동, 다시 말해 빛의 행위이자 고통”이라 했다.[2] 어둠의 심연을 뚫고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빛이 감내한 마찰이 바로 우리가 보는 색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빛으로부터 황색이, 어둠으로부터 청색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이 두 극단이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완벽한 평형을 이룰 때 탄생하는 조화를 초록이라 정의했다.[3] 색과 형태를 정신적인 세계와의 상호작용으로 보았던 19세기 신지학자들도 초록을 조화와 공감, 치유의 색으로 보았다. 초록은 빛이 어둠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며 안식을 찾은 '화해의 장소'이자, 존재가 본연의 모습을 회복한 상태이며, 동시에 타자에게 평온을 건네는 정신적 공명이라 할 수 있다.


2. 구원하는 빛

호크마김의 작업에서 ‘나무’와 ‘초록’은 그것이 지닌 사회문화적 상징과 별개로, 개인의 사건과 맞물리며 체화되어 취득한 주제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단풍나무에서 별빛이 쏟아지는 포옹을 읽어내고, 앙상한 겨울나무에서 생명의 기척을 발견한다. 거센 바람을 맞으며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자라난 뉴질랜드 슬로프 포인트(Slope Point)의 나무로부터는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는 위안을 받는다. 삶의 굴곡진 갈등과 고민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나무가 뿜어내는 색채는 작가 내면의 주파수와 공명하며 어김없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언젠가 그는 ‘자신이 그리는 것이 나무인지 색인지 구분되지 않는다’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이는 대상을 관찰하는 시선이 외형의 재현을 넘어 존재의 본질적 파동과 맞닿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빛으로서의 색이 어떻게 존재를 드러내고 생명력을 일깨우는지, 작가는 이론보다 앞선 감각으로 먼저 체득해 왔다.

내면에서 소리 없이 공명하는 빛의 질서는 신작 <The Light>에서 구체적인 사건으로 등장한다. 작년 초겨울, 작가는 짙은 우울의 시기를 지나며 도망치듯 제주를 찾았다. 칠흑 같은 산길, 오롯이 내비게이션과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숙소를 찾아가던 막막한 시간 속에서 그는 인생의 단면을 마주했다.

헤드라이트는 노란빛을 지니지만, 그 빛이 뻗어나가는 순간 잔디는 빛의 색에 물드는 대신 제 몫의 초록을 회복한다. <The Light>는 어둠이라는 무차별적인 익명성 아래 만물의 고유함을 덮어버리던 침묵이 깨치는 찰나, 즉 빛이 존재의 고유한 주파수를 다시 호명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작품 속 쏟아지는 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잔디는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놀라 털을 주뼛 세운 고양이처럼 곧추선 모습이다. 어둠을 걷어내고 존재를 각성시키는 빛은 때로는 이토록 대상을 제압할 만큼 강렬하면서도, 길 잃은 자를 본연의 자리로 되돌려놓는 자애로운 구원의 속성을 지닌다. 존재의 긍정인 빛 앞에서 호크마김은 자신을 수년간 괴롭혀온 어두운 자리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4]

3. 영원히 바래지 않을

개인의 구원에서 시작된 서사는 빛에 대한 인식을 넘어, 광활한 초록의 우주로 진입한다. 전시명을 그대로 옮겨온 작품 <Permanent Green Light>는 폭 21m에 달하는 대형 벽화다. 작가는 동명의 물감을 바탕에 물들여 자신의 세계가 영원한 초록빛으로 확장되었음을 선언한다. 헤드라이트의 좁은 불빛이 비추던 찰나의 자각(micro)은, 이제 거대한 숲을 이룬 생태적 순환(macro)의 풍경으로 번져나간다. 불타오르던 해마저 초록으로 편입된다. 이곳에서 초록은 더 이상 대상이 입고 있는 색이 아니라, 우리가 숨 쉬고 부유하는 하나의 '상태'이자 '환경'이 된다.

확장된 세계 속에서 질서 또한 새롭게 재편된다. 기울어진 나무와 향나무 군집 등, 이전 작업에서 각자의 자리에 뿌리내리고 있던 존재들은 이제 한 화면 속에서 상호 공존하는 연대의 질서로, 모든 생명이 하나 된 장면을 이룬다. 거대한 세상의 바탕에는 입자들이 존재한다. <Fully>에서 그리드의 형태로 등장했던 초록의 입자들은 <You holding me tight>에 이르러 쏟아지는 픽셀의 파편으로 해체되고, 이내 벽화 속으로 날아든다. 

‘평정한’ 초록의 상태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부지런히 교차하고 있는 빛과 색의 긴밀한 움직임이 자리한다. 색이 빛이 되고, 빛이 색이 되는 끝없는 순환. 나뭇잎의 미세한 핏줄을 타고 흐르는 초록의 생기는 캔버스의 경계를 넘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나뭇잎의 앞면과 뒷면이 제각기 다른 빛깔을 발하듯, 자연의 초록이 저마다의 생명이 지닌 고유한 얼굴만큼이나 수만 가지로 나뉘어 있듯, 화면 속 초록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초록의 가능성을 품은 채 ‘빛’으로 일렁인다. 

하늘에는 붉게 타오르던 유일무이한 태양 대신, 투명하고 푸릇한 복수의 해가 떠오른다. 괴테는 “우리들이 자신의 눈 속에 빛과 색채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면, 외부에 있는 빛과 색채도 알아볼 수 없다”며, 두 개의 태양, ‘우리 안에 내재한 태양’과 ‘하늘에 떠 있는 외부의 태양’의 동일성을 언급했다.[5] 호크마김의 증식된 태양들 역시 안과 밖의 경계 없는 빛의 조응처럼 존재한다. 작가는 내면에 잠재된 태양을 호출하여 견고하게 고착되어 있던 외부 세계의 질서를 유연하게 흔들어 놓는다. 하나뿐인 해가 중력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부유하는 풍경은 세계를 바라보는 고정된 시각을 해체하며 정신을 무한한 자유의 궤도 위에 올려놓는다. 이는 대상과 주체가 분리되지 않은 채 서로를 비추는 신화적 상태로, 태초의 감각을 회복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360도로 펼쳐진 구조 안에서, 관객은 관찰자의 입장을 넘어 기존의 질서가 해체된 세계 속으로 신체가 편입되는 현상학적 체험을 하게 된다. 초록의 파동 사이를 부유하며 ‘색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6] 이 경험은, 나와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하나로 합치되는 인식의 전회(轉回)를 선사한다.

<The Light>가 어둠에 잠겨있던 터널 안에서의 간절한 응시였다면, <Permanent Green Light>는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와 온몸으로 맞이하는 눈 부신 빛의 세계의 현현(顯現)이다. 빛과 어둠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가장 깊게 포옹한 이 완벽한 평형의 장소에서, 우리는 바래지 않는 영원한 초록의 빛을 목격하게 된다.

4. 나가며

호크마김이 구축한 초록의 세계는 이처럼 색채의 향연을 넘어, 계절의 뒷면과 대지의 침묵 아래에서도 쉼 없이 뛰고 있는 생명의 기운을 모두 끌어안는다. 빛(구원)과 어둠(고통)이라는 필연적인 저항을 뚫고 나올 때 비로소 초록이 태어난다면, 그 속에는 고난을 견뎌낸 모든 시간의 층위가 짙게 스며 있다. 그것은 작열하는 태양과 노을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응축된 빛의 씨앗이며, 다시 깨어날 에너지를 머금은 ‘총천연색’으로서의 초록이다.

색은 빛이 되고, 빛은 다시 색으로 화(化)하며 무한한 삶의 순환을 이룬다. 이번 전시는 초록의 모음집이 아니라, 빛을 통해 자신의 생명력을 복원해 낸 존재들이 머무는 ‘안식의 장소’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터널을 통과해 퍼져나가는 초록 공기를 품고 전시장을 나선다. 고통을 비추던 그 빛이 깊이 숨겨져 있던 작은 초록 하나를 건드린다. 바래지 않는 영원이 그곳에 점등되어 있다.



[1] 마르틴 하이데거(1889- 1976)의 알레테이아(Aletheia), 즉. 은폐되어 있던 것이 드러나는 ’진리 개념’을 차용했다. 호크마김의 작업에서 빛이 존재의 고유성을 호명하는 과정과 맥을 같이 한다.

[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색채론』, 장희창 외 옮김 (서울: 민음사, 2025), 29.

[3] Ibid., 43.

[4] 호크마김 작가노트 「The Light」, 2026

[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색채론』, 장희창 외 옮김(서울: 민음사, 2025), 17.

[6] 이러한 경험은 모리스 메를로-퐁티(1908-1961)의 현상학에서 논의된, 세계와 몸이 서로 얽혀 있는 지각의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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